찰라를 통해 영원으로

오늘은 시편 107-109입니다.
하나님은 현실의 문제를 통해 나로 궁극적인 것으로 인도하십니다. 외부적인 궁핍한 상황으로 인해 내면의 자아가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합니다.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시 107:5)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궁극적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시 107:6)

하나님은 신비롭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 계시지만, 땅이라는 낮은 곳에 오셔서 우리 삶에 동참하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하늘의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중적입니다. 한편으로는 나의 가장 현실적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궁극적입니다. 전자는 나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구원이고, 후자는 그일을 통해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찾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배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 (시107:8)

기도:
1. 아버지, 오늘 나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도와주십시오.
2. 어려움을 통해 나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고, 기도의 영력을 늘려주십시오
3.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나에게 주십시오.

하나님이 지혜로 정한 경계선

2015년 7월 24일 금
시편 104-106편

105:28 그가 어둠을 보내셔서 캄캄하게 하셨지만, 그들은 그의 말씀을 거역하였다.
29 그가 물을 모두 피로 변하게 하셔서 물고기를 죽게 하셨으며,
30 땅에는 온통 개구리가 득실거리게 하셔서 왕실 안방까지 우글거리게 하셨다.

1.
시편 104편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혜로 각각의 영역을 정해주심을 말합니다. 낮과 밤의 경계가 있고, 물과 육지의 경계가 있습니다. 물은 경계를 넘지 않음으로 육지가 있습니다.

2.
시편 105편에서는 하나님이 출애굽기의 과정에서 그 피조물의 경계선을 임시로 없에셔서, 피조물들이 다른 영역으로 침범해 들어가면서 원래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두움이 낮에 들어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물이 피가 되고, 물에 사는 개구리가 육지로 올라옵니다. 그 때부터 어두움은 쉼이 아니라 두려움을, 물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을 전하게 됩니다.
질서가 무질서로, 아름다움이 추함으로, 생명이 사망으로 변합니다.

이집트는 스스로 높다고 거만하며 자신의 부유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했지만, 알고보니 하나님이 지혜로 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피조물이 자신의 주어진 경계선 안에 머물도록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비의 영역을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온 나라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평화로울 때 스스로 된 것 같이 여기지만, 하나님이 조금만 이 세상의 질서를 흔드실 때 내 삶이 흔들흔들합니다.

3.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이 피조물의 경계를 움직여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도 합니다.

105:40 그들이 먹거리를 찾을 때에, 그가 메추라기를 몰아다 주시며, 하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해주셨다.
41 반석을 갈라서 물이 흐르게 하셨고, 마른 땅에 강물이 흐르게 하셨다.

광야에서 메추라기를 만나게 하시고,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시고
광야에서 강물이 흐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광야에 있기에, 내가 살아납니다.

오늘 아침에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단비를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합니다.

기도:
1. 창조주 하나님, 나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이 참된 주권자 이십니다.
2. 오만하였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살 수 있다 함을 회개합니다.
3. 지금까지 내게, 가정에, 교회에, 이 나라에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그 은혜를 구합니다.

매일시편기도: 시편 101편-103편

2015년 7월 23일

오늘은 시편 101편-103편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시101:2 흠 없는 길을 배워 깨달으렵니다. 언제 나에게로 오시렵니까? 나는 내 집에서 흠이 없는 마음으로 살렵니다.
시101:3 불의한 일은 눈 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렵니다. 거스르는 행위를 미워하고, 그런 일에는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시101:4 구부러진 생각을 멀리하고, 악한 일에는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
시101:5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는, 침묵하게 만들고,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는, 그대로 두지 않으렵니다.

창의력 있는 인재들이 컨텐츠가 있어도 기회를 얻기 못하는 것은 우리가 호되게 시집살이 시키는 못된 성품을 가졌기 때문이니다.

“불의와 거스르는 행위”, “구부러진 생각”, “악한 일”, “헐뜯는 말”,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함”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이 우리의 기회를 불공평하게 박탈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하며, 그러한 일을 묵인합니까?

“성품”이 대한민국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체된 것은 열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성취에 대한 갈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실력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이 것들이 높지만, “성품”을 갖추지 못하여서 개인이 국가가 함께 기회를 누리고 함께 성장하지 못합니다.

시편기자의 말을 들으십시오.
시101:1 주님, 주님의 사랑과 정의를 노래하렵니다. 주님께 노래로 찬양드리렵니다.

기도:
1. 주님의 사랑과 정의를 알게 하옵소서. 찬양하게 하옵소서.
2. 나의 집에서 “거짓”과 “속임”을 쫓아내겠습니다. 회개하오니,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하시고, 성령으로 의로움과 거룩함을 주십시오.
3. 이 나라에서 “악인”과 “사악한 자”들을 끊어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이 땅에 차게 하옵소서.

2015년 7월 22일. 시편 98-100편

오늘은 시편 98-100편을 읽고 기도합니다.

시98:1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여라.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그 오른손과 그 거룩하신 팔로 구원을 베푸셨다.

오늘 하나님은 “오른손과 팔을 가지신 분”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성경에는 종종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님을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하지요.

오른손은 능력을 뜻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기적은 바울의 표현대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심”(엡 3:20)을 뜻합니다. 내 기도의 내용보다 더 크게 응답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경험합시다.

또한 그 팔은 “거룩하신” 팔입니다. 악한 신이 능력이 있으면 골치 아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시고”(2절), “인자하시고”(3절), “성실”(3절)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영적인 것 뿐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응답은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는 것입니다. “새 노래”는 (1) 알던 노래이지만 가사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으로 해석가능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같은 찬양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새 노래는 (2) 새롭게 창작된 노래를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부흥의 세대는 자신들의 스타일로 자신의 경험, 생각, 느낌을 새롭게 작사 작곡합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새 찬양이 없는 세대입니다. 새 찬양이 생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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