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사회복지회 방문

4월 26일 화요일에 햇살사회복지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Yuri Doolan과 이인화도 새로 참석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할머니들과 함께 밥먹으며 대화하는 것은 평범한 듯 하지만, 사람의 내면을 흔들어놓는 감동을 주고, 나를 변화시킵니다.

지속적으로 후원해 주고 함께 방문할 사람들을 놓고 기도를 시작해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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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목요예배

성목요일의 유래는 유월절 만찬이다.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진 집 안은 안전하지만, 그 밖은 죽음이 있는 공간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 되심으로 그 피를 흘리셔서 우리로 죽음이 아닌 생명의 공간과 시간에 있게 해 주셨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위해 집 밖으로 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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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최근에 어느 평신도께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는 글을 쓰셨고, 또 그것을 공감하시는 제 몇몇 지인들이 페북에 그것을 공유하셨습니다. 글을 읽어보면서 그렇게 쓸만한 아픈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성경이 그렇게 가르칩니다.
  • 개신교 신학과 실천의 전통이 그렇습니다.
  • 현재 목회 현장에서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성경은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 예수님은 설교하셨습니다. 그것은 권세있는 말씀이었습니다.
  •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 아닌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한 예언자는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예언은 미래의 예측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언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예언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설교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 신약에서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에서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예수]에게서 듣고, 또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에베소서 4:21; 표준새번역)

  • 이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에 찾아가 말씀을 전한 것은 바울이었습니다.  즉, 자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2. 개신교의 전통에서 설교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 종교개혁자들이 설교를 예배의 중심에 둔 것 자체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그들의 신학을 반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16세기 개혁교회가 사용한 하이델베르그 소요리 문답의 일부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복음의 설교(preaching)에 의해 우리의 마음에 그것[믿음]을 만드시며, 성례전에 의해 그것을 확증하십니다” (65항 답변) 라고 말합니다.
  • 유명한 챨스 스펄전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졸고 있는 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에게 호통치면서 ‘내 말을 듣고 있다면 졸아도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데 졸고 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 칼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에서 설교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정리합니다.
3. 목회 현장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 만일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이라면 설교를 통해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성도들에게 줄 수 없습니다.
  • 만일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설교를 예배에서 빼야 합니다.
*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은 목회자들을 대표해서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 자신을 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아닌 것을 말씀처럼 전한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복음 + 왕좌의 게임 = 구원

2015. 9. 3 목
갈라디아서 1:5-10

한국 사람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구원으로 여기는 듯 합니다.  입시생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취준생은 좋은 기업에 들어가는 것, 나이가 들면 조직이나 단체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는 일 뿐 아니라 자기 가치 증명의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고, 그것을 부러워하고 축하하거나, 시기 질투를 하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영혼 구원을 위해, 실제의 삶은 자리를 차지함으로 생각합니다.  즉 “예수 믿는 것” + “자리 차지”까지 되야 “참된 구원”을 얻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복음에 자꾸 무엇인가를 첨가하거나, 혹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암암리에 생략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인 듯 합니다. 바울 때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복음에다가 할례라는 의식을 살짝 끼어넣으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을 반박하는 갈라디아서를 씁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과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짐을 말하며, 오히려 “육체의 것”은 복음에 보탬이 되어 보이나 결과적으로는 복음을 박해함을 설명합니다.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올리는 순간 우리는 당을 짓고, 다투고, 싸우고, 깍아 내리고, 살인합니다.  오직 그것이 주어질 때 충성을 다해 그 자리가 해야할 역할을 해야할 뿐입니다.

갈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기도:

  1.  중심에 예수님만 계시고, 예수 아닌 것이 있으면 몰아내소서
  2. 자리를 통해 자기 증명을 하려 하지 말게 하소서

 

featured image: Game of Gnomes by Apionid // CC by 2.0

기회와 안정

2015-09-02 수
갈라디아서 1장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를 봤습니다. 자살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판단이 서기 때문에 하는 것이랍니다.

두 가지 이유로 자살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성취하고, 자기를 증명하고 싶지만, 애초에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둘째는 불안정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한편으로는 적응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하며, 다른 한편으로 낙오가 되어 낙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변화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은혜와 평화에 대해 말합니다.  은혜라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약속을 믿기에 결과가 주어지며 증명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나 결과를 못 얻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약속 받았기에 노력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이 사회가 어디로 가는 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내 삶을, 또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기에,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은혜와 평화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가 그 대가를 치루어서, 이 기회없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이동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감사를 올립니다.

갈1:3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갈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셨습니다.
갈1:5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기도:

  1. 내게 은혜를 주사: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받고 노력하는 사람 되게 해 주십시오
  2. 내게 평화를 주사: 이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알게 하옵소서.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 할지,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해 주십시오.
  3.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를 알고, 하나님께 나와서 경배드리는 자가 늘어나게 하옵소서.

 

Featured Image: “rest” by Vladimer Shioshvili // CC by 2.0

결론이 희극인 자

2015. 9. 1. 화
시 149-150

인생의 승패는 마지막에 있습니다.  중간에 잘 나가도 마지막이 비참한 사람은 불행합니다. 여러 시련을 겪었으나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어려웠던 것도 나에게 유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편의 마지막 결론은 찬양의 축제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모든 악기가 동원된 신나는 찬양을 합니다.  마치 결혼식의 피로연과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 기쁨으로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번째는 우리의 신실함입니다.  시편 1편처럼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신실함입니다.  시편이 뒤로 갈 수록 시편 기자들은 우리의 신실함보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해 더 많이 호소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신실함은 무너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음시다.  그분을 찬양합시다.

시150: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50: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시150: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시150: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기도:

  1.  인생의 결말에 노래와 춤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2. 주님 앞에 신실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3.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늘 맛보게 하옵소서

 

cover image: Flickr 5.25 Party by David Yu //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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