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세상에 빛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빛된 청년들 입니다. (light of the world 세상의 빛)

우리는 이세상에 빛이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빛된 청년들 입니다. (light of the world 세상의 빛)

우리는 나자신의 삶을 위해서만 사는것이 아니라 이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낮은 곳으로 눈을 향하여  섬기는 청년 입니다. (Low 낮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열정적인 청년입니다. (Low불타오르다)

1424742650238

 

1424742686296 1424742693749 1424742697918 1424742702536 1424742744094

1424742669241

기도하러 오는 이가 없다.

신촌의 어느 교회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세 분을 본다. 다행이다. 기도하는 분들이. 그러나 그 수 없이 오고가는 젊은이들이 카페와 음식점 서점 화장품 가계에 버글거리나, 심지어 이 교회 카페와 세미나실에 가득하나, 기도하러 오는 이가 없다.
페이스북으로 온라인 게임으로 케이블 TV로 술로 밤을 새우며 떠들어대는 소리는 울려퍼지나, 밤을 지새우고 새벽을 깨우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졸립다 말하며 잠을 청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0074
하나님은 대제사장과 그 아들들 대신 지성소에서 밤을 새던 사무엘을 택해, 그들 대신 다음 세대 지도자로 세우신다.

그 일이 지금 이곳에서도 일어나리

 

좋은 신랑 고르기

좋은 신랑 고르기

1. 그는 그 바쁘고 스트레스 받는 와중에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취미 생활을 즐기는가?

2. 그의 그 취미는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지 혼자 할 것인가?

 

photo-1416339276121-ba1dfa199912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걸 진심으로 고백한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 같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욥 1.21)

–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롬 12.15)

–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 내 몸과 마음이 다 시들어가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 (시 73.25-26)

– 하나님은 우주에서 유일하게 확실하고 변치않는 것이다. (존 파이퍼)

 

78c8dff1

 

젊을 때의 이상과 힘과 실력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가장 힘있고 실력있을 때, 한 이집트 왕자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일을 꿈으로 삼고 이루고자 하였다.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 노예 해방.

그러나 그가 그 힘과 세력을 다 잃어버리고, 그가 젊어서 왕국에서 배운 것들은 가물가물하고, 젊음의 힘을 빠지고, 이제는 보잘것 없는 시골 목동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하나님에게 선택받아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꿈을 이룬다.

모세는 젊을 때의 이상과 힘과 실력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참된 의미 있는 길을 가게 되었다.

인생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가?

 

photo-1414788020357-3690cfdab669

사람을 세우는 자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자가 되는 것”

 

그러겠다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거꾸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가능할 일

 

62074c9eeece11e2ae7f22000ae912b7-7

교회 건축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 모인 군중중에서 남자만 세도 오천명이나 된다고 해서 교회 건축을 계획하시고 건축 위원회를 세우고 작정 헌금을 시키지 않았다.

한번 설교로 삼천명, 오천명씩 회개시키고 세례를 준 베드로도 그러지 않았다 .

아시아와 유럽을 돌아다니며 교회를 세우고 도시를 뒤집어 놓았던 바울도 그 많은 서신가운데 교회 건축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이들은 다 목회가 뭔지 모르셨던 것 같다.

 

015

“겨자 씨”만한 믿음

어느 새로 믿은 성도가 문자를 보내서, 잘 안 믿어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상황에서 문자 보낸 것 자체가 겨자 씨 만한 믿음을 가진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내가 하나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분은 우리에게 “겨자 씨”만한 믿음만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씨만 있으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신다. 그러니, 내가 자신감에 넘쳐있을 때에도, 혹은 내가 완전히 낙망해 있을 때에도, 항상 일관되게 나를 대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기에 잘난 척 하거나 움추려 들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ne13feb34-ALL-the-mustard-seed-DSC_0776alt